나는 번잡스러운 곳이 정말 싫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별로 한 것도 없는 날조차 피곤함에 몸이 축축 쳐져버린다.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서는 내 몸과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다. 그래서 나는 불금이 싫고, 행사가 싫다. 넘실거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싫다.
같이 어울리고 싶은데 제대로 동화되지 못하는 기분이 빈번했다. 물위에 뜬 기름 같았던 경험을 몇번 하고 난 후에야 나는 꽤 목가적인 성향의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고, 또 수차례의 경험과 실패 이후에 외향적이지 않은 나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이 어렵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내 내향적인 성격을 인정하고 나서 더 내향적으로 변했다. 부득이하게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야할 일정이 잡히면 그 전날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며 가기 싫다,라는 생각을 수십번 하는 정도다. 한번씩 내려가는 시골 촌동네인 엄마 집에 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한적한 시골에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나를 위한 일자리따위 없겠지 후후후후.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어떻게든 선택지에서 배제해버리려 노력하다보니 서울 방문을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서울은 적어도 내겐 너무 힘든 곳이다. 사람, 차, 마천루. 하나같이 다 싫다. 그런데 더이상 주문이 불가능한 가방의 재고가 있는 매장이 서울에 있다하여 지하철에 몸을 실은 나년. 한심하다. 뭔가 굉장히 쓸모없는 인간같다...
여튼 품절된 가방 구매를 위한 서울행은 가는데 한시간 반동안 지하철과 버스, 매장에서 가방 구매하는데 소요한 5분 남짓(보자마자 바로 결제), 다시 돌아오는데 버스안에서 두시간으로 끝났다. 목적지가 유행과 새로운 것들의 집약체인 곳인데 그 흔한 커피 한잔 안 마시고 바로 버스에 몸을 실은 나. 30분도 안 지나서 교통수단을 갈아탈때마다 환승입니다 소리를 몇번이나 들었던가. 그렇게 집에 돌아왔는데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후에야 내 바운더리안에 들어온 느낌에 긴장이 팍하고 풀렸다. 몸이 녹신녹신하다.
나는 서울이 싫다. 많은 사람들이 첫번째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나느 서울의 몇층인지 가늠도 되지않는 건물들이 싫다. 분주하게 나를 지나쳐가는 사람들이 싫다. 서울은 나만 여전히 멈춰있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래서 조바심이 나고, 두려워진다.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구나, 세상은 또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구나, 내가 손과 발로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이란 것이 정말로 먼지처럼 작은 부분에 불과하구나, 세상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다 경험해보지 못할 방대함으로 구성되어 있구나. 이런 생각들에 잠식되어 숨이 막힌다.
내가 고민하고 결정한 신중한 선택이었는데 자꾸만 혹시나 내가 틀린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이때다 하며 머리를 기웃거린다. 내 생활의 느슨한 시간의 흐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빠른 속도에 내가 뒤쳐지고 있다는 것을 직면하는 건 비참하다.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것을 굳이 내 얼굴앞으로 들이미는 것 같아 고약하다. 멀찍이 동떨어진채 앞사람들의 뒷통수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기분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져버린다.
도망치듯 잰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물 한잔을 마시고 자리에 앉으니 익숙한 내 공간이 피부에 감겨왔다. 익숙한 풍경,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 느릿한 시간이 있는 내 자리. 안도하며 앉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거다.
이게 맞는 거 진짜 맞나?
사실은 내가 정말로 뒤쳐져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려고 노력도 안하는 것 아닐까?
나는 경험할 수 있는 너무 많은 부분들을 포기하고 버리고 있는 것 아닐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 삶의 방식이 정말로 그 반대의 방식보다 나에게 더 큰 행복과 만족을 충족시켜주긴 하는 걸까?
시간은 여전히 느리게 흐르고, 나 역시 오늘도, 내일도 느리게 살아갈 것이다. 오늘의 이 찜찜한 의문은 늘 그랬듯 폭신한 망각의 모래들로 덮어 숨길 수 있다. 도망치고, 도망친다. 이런 행로의 끝은 과연 어떨까?
찜찜하고, 뭔가 개운치 않다. 그러나 나는 망각을 삽으로 푹푹 떠 오늘위에 쏟아붓는다.